인도가는 길 1. 델리, 도심에서 사는 법.파하르간즈에 있던 숙소를 나와 뉴델리 기차 역까지 걸어 가면서 첫날은 카메라를 꺼내 들 수가 없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충격적이고, 빠르고, 많기도 하여 그것을 받아들이고 상황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카메라를 꺼내도 되는지, 천천히 걸어도 되는지, 그들과 섞여도 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심장이 쪼그라 드는 것 같았고 겁을 잔뜩 집어먹은 아이처럼 어딘가 불안한 구석이 있었지만 그 시장 안을 당당히 걷고 있었고 연신 관찰하는 자의 눈으로 구석구석을 살폈다. 델리의 거리는 자동차와 릭샤 (사람이 탈수 있는 수레를 오토바이에 단 오토릭샤와 자전거로 끄는 사이클 릭샤), 오토바이, 사람, 소, 개가 잘 소화되지 않는 위장을 들여다 보는 것 처럼 뒤엉켜 있다. 오토릭샤를 타고 있는 동안은 카메라를 꺼내어 길을 찍기도 했고 거리구경을 하기에 차라리 안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길 위에서는 바퀴를 갖고 있는 모든 교통수단이 동시 다발 적으로 경적을 눌러 대었고 심지어는 습관이나 장난이 아닐까 싶을 만큼 별일이 없어도 아무때나 빵빵 소리를 내는 것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도시는 말그대로 리듬없는 트럼펫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울려대는, 끝나지 않는 파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만드는 경적소리가 급한 마음에 서로에게 화를 내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것은 물이 흐르며 졸졸 소리를 내듯, 별이 반짝 빛을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그저 차도, 릭샤도 자신이 여기에 있다고-지나간다고 서로 신호하고 있는 방법이구나, 알았다. 서로 앞서려고만 하는 줄 알았는데 실은 가장 빠른 방법으로 비켜나가 흐르고 있었고, 어느 누구도 화내거나 소리치지 않았다. 기분 나쁜 인상을 쓰지도 않았다. 복잡하게 밀집된 곳을 빠져나가는 중에도 부딪히거나 사고가 나지도 않았다. 그런 정신없는 상태는 언제나 일어났고 그것 자체가 그들의 법이고 나름의 질서였다. 그들의 질서를 이해하고 나니 카오스 속에서 거침없이 달리는 릭샤에 앉아서도 편안해졌다.찬드니 촉은 거대한 서민시장이다.길에는 사람, 릭샤, 자전거, 소, 개, 자동차와 더불어 짐을 싣는 수례도 함께 뒤 섞여 흘러간다. 길은 깨끗하지 않았고 수많은 물건과 여기저기 거리에 나와 앉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길거리에 파는 음식들은 맛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먹자마자 배가 아플 것 같았다. 울긋불긋한 향신료를 파는 거리를 지나니 눈과 코가 매워 연신 기침이 났다. 길거리에는 아저씨들이 위생을 신뢰할 수 없어 보이는 도구들로 냄비 한가득 짜이를 끓이고 있다. 나무 아래에는 많은 남자들이 그저 앉아 있다. 성비로 보자면 남자들이 월등히 많았고, 간혹 보이는 여자들에게 길을 물으면 소극적이거나 말을 잘 섞고 싶어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시장은.. 이라고 써두고서는 한참을 생각하게 한다.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혼돈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고 삶이 존재 하는 장이 아니라 맑아질 수 없는 시궁창의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드는 것이 감히 섯부른 혹은 교만한 선입견은 아닐까 싶어 쉬이 꺼낼 수 없지만 편치만은 않은 감정이 존재했으며 익숙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 곳인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을 한번에 날려준 것은 찬드니촉에서 맛본 ‘짜이의 맛’이었다. 이 익숙치 않은 시장에서는 어느 것도 먹어 보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지만 동행했던 선생님과 살짝 맛만 보기로 하고 10루피 (160원쯤)를 주고서 한잔의 짜이를 건네 받았을 때, 시장에 대한 부정적이고 암울한 생각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상상하지 못했던 맛에 깜짝 놀랐고, 잘 우러난 아쌈의 차에 우유와 설탕의 단맛이 잘 조화를 이루어 낸 이 차가 못내 아쉬워 한잔 더 주문하기까지 했다. 사막가운데 피어난 꽃 한송이의 향기를 맡는 기분이 들었다. 그 짜이의 맛이 시장사람들의 노고를, 거리의 삶을 위로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짜이란 그런 맛과 의미를 갖고 있는 것 처럼 여겨졌고, 찬드니 촉에서 마셔본 짜이의 맛이 두고두고 기억이 날 것 같았다. 시장 한 가운데에서 마셨던 그 맛의 경험은 그 무엇보다 강렬했다. 시장의 정신없이 엉켜있는 풍경들과, 온갖 소음, 강한 향신료의 향과 거리의 오물냄새가 뒤섞인 가운데 달고 부드러운 맛의 감촉은 완전한 전복을 이룬 원초적 경험일 것이다. 오직 그 곳이라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맛.또, 짜이의 맛과 함께 마음을 열어 준 것은 그 복잡한 시장 한 가운데 놓인 학교였다. 아이들은 벽과 철문으로 바깥과 구분이 된 곳에서 교복을 입고 뛰어 놀았다. 우리가 철문의 창살에 머리를 박고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 아이들은 맑은 눈빛으로 우리를 보았다. 오아시스를 보는 듯했다. 경적이 쓰나미처럼 덥쳐 오는 소음 가운데에 샘물같이 고귀했다.이 풍경과 맛의 공존이 미묘하게 이곳, 사람, 모든 것에 대한 신뢰를 만들고 있었다. 시장에 들어서며 가졌던 스잔하고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저 이질적인 문화, 혹은 청결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 시장과 사람들의 무질서가 낯설었던 것일까. 인간의 민낯이란 본디 이런 속성이지 않았던가. 어떤 민족도 태초부터 질서를 갖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 그 이면에서, 사람들의 눈빛에서 삶의 의욕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인도의 역사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카스트 의 구별과 남녀 차별적인 인식들은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에는 DNA처럼 남아 있는 듯 보였고 그들의 삶을 강렬히 좌우하는 종교의 절대적인 생각들은 여전히 그들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안에 머물게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주어진 계급에서 충실하며 살면 다음 생에서 나은 계급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그들의 논리는 분명히 상위 계급을 가진 기득권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독점하고 하층계급의 봉기를 막기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 그들의 역사에서 영국의 식민지배의 과정과 실체에 반항하고 저항했던 억압들을 기득권이 똑같은 방식으로 지배하고 정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종교와 관습을 이용하여 민주적인 사고란 스며들 틈을 만들지 않으려는 정치. 정치란 그렇듯, 또한 우리라고 다를 바 없듯, 일제가 독립투사들을 가두었던 서대문 형무소에 해방 후에 기득권자들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민주투사들을 가두고 고문하지 않았던가. 종교라는 일방적 이념으로 세뇌하는 것은 가장 무섭고 변하지 않는 무기와 같다. 윤회의 생각이 깊게 자리한 인도에서 거리를 배회하는 ‘소’혹은 ‘개’같은 동물은 아마도 지난 생애를 살아냈던 누군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도시의 거리를 활보하는 소 조차도 귀하게 대접받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저 주어진 삶을 어디선가 살고 있는 ‘누군가’처럼 보여졌다. 나의 불편함은 쳇바퀴처럼 돌고 있는 어떤 현실을 목도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더 나을 것이 없는 삶.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부재한 시장. 헤어날 수 없는 생의 무게를 주어진 대로 사는 사람들.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종교적 이념이 강렬하게 지배하고 권력이 그것을 이용하는 사회적 구조의 순환.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 그러했듯 이것은 분명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간디 같은 지도자가 있었던 것을 기억해 내었다. 그가 몸소 보여준 실천들이 또 민중을 깨어나게 하였듯 분명 인간은, 분명 민초의 삶은 질기고 강렬하게 자생하고 또 새 생명을 만들어 낼 힘을 가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닿자 같은 상황이고 같은 여건인지 아닌지와는 상관없이 내게 어떤 기운을 주었다. 내게 찾아 든 이 먼 신경의 감각을 그대로 안고서 다음날 아그라로 떠났다. 2 타지마할, 산 것과 죽은 것 사이에 피어난 꽃타지마할로 가는 길은 예상처럼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시간과 경비와 편의를 생각하여 호텔에서 추천 받은 방법으로 차를 대절해 타지마할로 가기로 하고 이른 아침 출발을 하였는데 고속도로에서 시위대를 만났다. 고속도로가 폐쇄되어 되돌아 작은 마을을 지나는 아그라로 가는 옛 국도로 우회했다. 모든 차들이 그 길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차가 정체했다.카스트와 사회문제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들의 시위가 자주 있다는 이야기를 한국에서부터 듣고 갔는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3시간 걸려갈 길을 5시간이 걸려 닿았다. 도심이 아닌 마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 긴 이동시간이 지루하지는 않았다. 마을을 지날 때는 비가 왔다. 옆을 지나는 오토릭샤에는 사람들이 가득가득 타고 있었다. 릭샤마다 자신들의 취향을 드러내는 듯 화려한 장식들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가게도, 사람들의 옷도 울긋불긋한 화려한 색감이 빠지지 않았다. 우리의 오방색과도 언뜻 비슷하면서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그 나라의 글씨체를 보면 장식의 기원과 감각을 짐작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문자가 이미지보다 더 이후에 만들어졌겠지만 오래된 건물의 장식이나 양식, 그들의 문자나 전통적 춤 사위 같은 몸짓은 다 일맥상통한다. 그러니 모든 문화는 총체적으로 하나이고 한 덩어리로 이해하면 된다. 아시아를 거쳐 인도까지 연결 하며 혹은 그 반대로 생각을 해보며 어렴풋 연관성을 상상해 본다.마을은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여유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곳곳에 열린 시장에서는 싱싱한 야채들이 많았고 다양한 색의 소들이 훨씬 더 자유롭게 다녔다. 아이도 어른도 소와 개들도 각자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듯 잘 어우러져 삶을 이루고 있었다.우려곡절 끝에 도착한 타지마할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 닿아서는 건축적인 것에 대한 경의보다는 ‘의미’로서 가슴에 다가왔다. 여행에 동행한 선생님과는 줄곧 우리자신의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아마도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제왕이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지은 '무덤'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본당을 둘러보는 동안, 그 본당이 보이는 어딘가에 앉아서 우물처럼 마음의 깊은 어딘가에서 들리는 울림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끝없이 이야기가 오고 갔고 심지어는 오열했고 보듬었다. 타지마할이라는 오래된 웅장한 애도가 오늘의 우리를 또 애도 하였다.타지마할은 산 것과 죽은 것 사이에 피어난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덤은 성전 같았고 또 아름다운 꽃과 같았다. 죽음은 곧 종교가 되고, 사랑하므로 신이 되는 것. 그 죽음의 애도는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살아있는 우리를 다시금 위로한다. 가슴 속에 묻어둔 귀한 한 사람을 불러와 다시 이곳에서 소중하게 기억하고서 아름다운 무덤이자 성전 앞에서 곱게 다시 보낼 수 있는 곳이지 않은가 생각했다. 선생님은 어머님을 소중히 다시 떠올렸고, 나는 나의 외로움과 고독한 사랑을 불렀다가 다시 묻었다.타지마할을 그렇게 의미로 만나고 나니 다른 어딘가를 관광하 듯 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감흥을 다른 볼거리로 덧 입히지 않고자 바로 델리로 돌아갔다. 가는 내도록 석양이 평화롭고 아늑하게 대지를 비추었다. 따스한 햇살이 이 땅에도 드리워졌다. 신이 이 땅을 축복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로 들어서자 또 다시 경적소리들이 길을 가득 메운다. 이제 이 소리조차도 산 것들의 아우성이고 의지이며 도심에서 맹렬히 살고자 파르르 떨고 있는 꽃송이 같이 느껴진다. 아무리 거칠게 차를 몰고, 끼어들고 살아있는 모든 것이 뒤섞인 이 길도 어느덧 물길처럼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고 느껴졌다.이것이 어쩌면 인도의 힘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3. 다르질링 Darjeeling, 차나무 되기굼티 Goomtee라는 다르즐링의 한 다원에 왔다.처음 묵었던 다즐링 싱톰 Singtom 다원과 다즐링 시가의 유서 깊은 한 호텔을 거쳐 유네스코에 등재된 증기 기관차인 토이트레인을 타고 한참을 내려왔는데도 산의, 깊은 산의 중턱에 있다. 해발 2000m가 넘는 고산지대인 다르질링은 가파른 산 기슭에 차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차나무는 배수가 좋아야 하는데 히말라야 산줄기 아래로 경사진 이곳이 차나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라고 했다. 그래서 산의 능성이와 경사를 따라 파도처럼, 때론 비단결처럼 구비구비 넘실대는 차밭을 보고 있으니 자연의 힘이란 놀라운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동백과에 속하는 차 잎에서 그런 차의 향을 내고 맛을 추출해내는 기술을 만들어 온 인류의 역사가 또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다원이 있는 숙소에서 묵으면 그 다원이 운영하는 공장을 견학하며 다르질링 홍차 만드는 과정을 보고 설명을 들을 수가 있다. 다르질링의 차는 3월과 4월에 따는 Spring First Flush, 몬순 우기직전까지 따는 Summer Flush, 가을에 따는 Autumn Flush 가 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렇게 시기를 나누는 차는 다르질링 차가 유일하다. 이 차들은 홍차이기때문에 산화의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Spring First Flush의 경우 찻잎을 따고 완전한 차가 만들어지기까지 하루에서 이틀의 짧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녹차에 가까운 녹색의 찻잎 색을 지니고 향도 녹차와 비슷한 싱그러운 풀향이 난다. 그러나 차를 만드는 과정이 녹차와 다르기 때문에(따자마다 산화를 막기위해 덖는다) 홍차로 구분하고(시들리고 비비는 과정을 거치면서 짧은 시간 산화한다.) 녹차와는 또 구별되는 독특한 맑고 싱그러운 Spring First Flush 의 맛이 있다. 우전이나 세작이라 할 수 있는 Spring First Flush는 양이 적고 우리나라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으며 대부분 차가 만들어지자 마자 다원에서 직접 유럽으로 수출이 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직접 차를 들여오지 않고는 거의 이 맛을 볼 수가 없다. 찻잎을 따는 사람들은 7시에 종이 울리면 등에 바구니를 메고 각자의 집에서 나와 차밭으로 나선다. 다즐링의 찻잎은 전량 일일이 손으로 따는데 저마다 봄에 삐쭉 솟아 오른 첫 세잎을 톡톡 따내는 모양새가 들리지 않는 음악이 들리는 듯 리듬을 탔다. 어느 다원에서는 손이 작고 섬세하고 성실한 여성들만 찻잎 따는 일을 한다고 했는데 이곳 굼티다원에서는 남녀 구분 할 것 없이 차밭에서 잎을 따는 일을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5시가 되니 또 다시 마을의 종이 울렸다. 이번엔 일제히 차밭에서 찻잎이 가득 든 바구니를 지고서 공장으로 줄지어 가서는 바구니의 찻잎을 쏟아 붓고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행렬은 어쩐지 차밭 만큼이나 자연과 잘 어우러졌고, 산의 능성이를 따라 넘실대는 또 하나의 차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풍경을 잘 담으려고 필름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돌렸지만 잘 담아지지 않았다. 차밭이 있는 풍경에 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장면이고, 삶의 일면이면서 자연과 마주하는 고결한 노동자의 모습이었다.차나무는 자신의 일을 하고, 일꾼들도 자신을 일을 했다. 차나무는 밤새 고산지대의 폭풍우와 빗물을 머금고 아침마다 새잎을 내었고 일꾼들은 갓 겨울을 딛고 뽀족 솟아난 그 새잎을 능숙히 따 내었다. 촉촉히 젖은 차밭의 숭고함이 가파른 능성이를 따라 깊고 넓게 펼쳐져 있었다. 차가 펼쳐진 이땅은 그대로 삶이자, 양식이자, 문화이자, 지식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땅을 밟고, 공기를 마시고 다원에 뜨고 지는 해와 비를 맞으면서 그대로 차나무가 되었다. 이 먼 타국의 나무와 더불어 우리가 하나의 우주인 것을 소름이 돋게 알아버렸다.자연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법이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과 어우러지며 순리대로 사는 법을 몸이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순리는 곧 자연을 따르는 법이고 이것이 자연의 법이다. 나는 이것을 ‘순수’라고도 말하고 싶다. 가장 자연적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인 동시에 그것이 가장 인간적이게 사는 법이라고. 이 차밭에서, 차나무 너머의 그것을 보았다. 생명과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경의가 아니고서는 차를 이룰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잔의 찻잔에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이른 아침 촉촉히 젖은 차나무 새순처럼 마음이 젖는다. 인사를 나누면 밝게 웃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순간 만큼은 나도, 차나무도 그런 모습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4. 차 한잔 속의 우주.한국으로 돌아오니 출발할 때 활짝 피었던 벛꽃이 지고 온통 라일락이 일제히 꽃봉오리를 틔웠다. 냉장고 안에서도 싹이 올라왔던 무우 반토막을 물에 담구어 두고 떠났는데 무우 꽃이 활짝 꽃을 띄웠다. 바야흐로 세상의 만물이 꿈틀대는 사월 말에 닿아 있다.지금은 이서재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다르질링 Jungpana 정파나 다원의 차를 우려내어 마시고 있다. 한 모금 입 안에 머금자 정파나의 차밭이 후루룩 그림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그러면서 굼티에서 1시간 반이나 가파른 산길을 걸어 가야 했던 정파나 다원에 이르던 길도 생생히 떠오른다. 길고 험한 길, 자동차가 닿을 수 없는 길, 벌써 몇년째 공사중이던 다리, 험난한 길 가운데 히말라야의 작은 폭포수와 맑은 물이 흐르던 계곡, 길에서 만난 아이들의 눈빛, 언제나 밝게 인사하는 인도 사람들. 그런 것들이 차 맛에, 향에 담겨져 있는 것 같다.여행은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진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한사람, 나와 동행했던 한사람은 타인으로서 혹은 내 자신을 비추는 거울처럼 깊은 감흥을 주었다. 동행했던 장선생님의 차에 대한 깊은 열정을 기억한다. 한국에서부터 다즐링의 아이들에게 건넬 필기구들과 한국의 그림책들을 챙겨 가시던 마음, 아이들을 보던 눈빛과 학교와 교육에 대한 희망도 다른 어디서 얻지 못한 또 다른 배움이다. 부족하지만 당당한 언어와 매시간 온몸으로 그곳의 모든 것을 느끼고자 하던 모습도 기억할 것이다. 차 밭을 만나고, 차에 관한 모든 것을 마주하며 아이보다도 영롱히 빛나던 눈빛을 보았다. 그 땅과 공기와 빛과 비, 사람이 조화롭게 일구는 차나무를 만나기 위해 기꺼이 달려간 당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다. 그 빛나던 모습을 나는 오래오래 한 사람의 증인처럼 이야기 할 것이다.잘 우려낸 찻잔 속 그 영롱한 빛깔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이 차 한잔에 온 우주가 담겨 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온 계절을 지나고서 틔운 찻잎 우러난 빛깔이 지닌 가치로움을, 그 생태계를 알고, 그 땅을 밟고 그 많은 손길과 맞바꾼 이 찻잎 우린 물이 지닌 세계를 몸이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먼 타국의 차가 아니라 나와 이어진 이 세계의 것, 이 땅의 기운, 우리가 지켜야 하는 고귀한 유산임을 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 자리에서부터 내 삶을 지키고 내 환경을 지켜내는 것, 온 우주가-이 지구가 하나인 것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후대에 남겨 주어야 하는 것은 이 영롱한 빛깔의 차 한잔, 차 한잔 속에 이 우주가 다 서려 있음을 아는 지혜, 믿고 먹고 마실 수 있는 인류의 유산, 때묻지 않은 자연 속의 밝은 웃음들과 그 미소의 가치를 지켜보아 주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인 것이라고. 그런 것이라고.인도로 향했던 길은 내게 그렇게 일러 주었다. + 에필로그 : 여행기에 미처담지 못한 그림 / 다즐링 싱톰다원 차 제조 공장 /노동의 숭고덧붙혀 이야기 하자면, 그토록 덥다는 델리에서 덥다고 느낀적이 없이 쾌적했고, 춥다고 말하던 다즐링에서는 춥지는 않고 서늘, 시원 했고, 연일 비가 온다던 다즐링에서는 때때로 비가 오기도 했지만 실내로 들어가거나 이동중에 비가 오고 길을 걷거나 꼭 좋은 날씨가 필요한 날에는 어김없이 화창했다.파리같은 모기는 델리에서 가끔 보긴 했지만 물린적은 없다. 다즐링의 토이트레인은 워낙 기적소리가 심해서 인생에 딱 한번만 타보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출발할때는 비행기가 결항하여 저녁 늦게 뭄바이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가 델리로 갔고, 첫날 호텔은 비행기 결항으로 취소하고 환불받았다. 그 외에 사건사고는 없었다. 아, 하나 있다. 다즐링의 한 호텔에서 미니 토마토 절임인 줄 알고 이지역에서 정말로, 최고, 최고, 최고로 매운 로컬칠리를 한입에 꿀꺽 삼켜 호텔의 주방팀이 다나서서 이서 화재 진화에 나섰다는, 다음날까지 위가 욱신거렸다는 웃지못할 이야기 말고는 사건사고는 없었다. 다행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