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영 집전 리뷰 이서 작가의 <집전>은 나를 둘러싼 여기와 저기의 삶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삶의 태도는 일상이 일어나는 집에 담기기에 집은 물리적인 건축이면서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삶과 닮아 있을 것이다. 내가 일하는 아뜰리에 건축가 사무소 동료는 ‘살고 있는 집 또는 짓고자 하는 집을 보면 각자 그 사람의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이서 작가의 <집전>은 보통 경험했던 전시와 다른 방식의 새로운 시도였다. 이서 작가의 <집전>은 실험이고, 다른 상태의 것이었다. 전시가 진행된 2017년 가을, 이서 작가의 집이라는 시간과 공간은 일시적으로 지속되고 비어 있는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삶이 지속되는 순간들이며 작가의 내면이 드러나는 삶의 장소였다. 그것부터가 집이라는 편안한 이름을 가지고 우리에게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는 전시였다. <집전> 프로그램 중 영문학자이자 문화평론가인 문강형준의 <문학과 집> 시간에 관심을 두었고 초대받았다.이야기는 이서 작가가 키우는 키가 작은 무화과 나무 옆에서 나누었다. 함께 모인 사람들의 호기심에 들뜬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좋은 분위기가 감돌았다.영어로 근대 소설(novel)의 어원은 새로운(new) 것에 있다. 그 새로움의 핵심은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이어져온 왕이나 공주, 신과 영웅이 아닌 평범한 주인공에 있다. <로빈슨 크루소>에 등장하는 선원, <업둥이 톰존슨>의 고아, <파멜라>의 하녀 등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그리고 나아가 <더버빌가의 테스> <시스터 캐리> <제인에어> <안나 까레니나> 등 당시 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문제적인 작품들은 모두 주인공이집을 나가는 이야기이다. 이런 근대 시대 주체인 주인공은 집에서 태어나 언어를 배우고, 법과 질서를 지킨다. 젠더, 인종, 계급과 관련된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따르면 안전하고 쉬울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사회가 정말 안전한 것일까.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주인공은 집을 나간다. 자유를 얻지만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고, 사랑이나 꿈을 쫓아가며 결국 파멸하기도 한다.문화평론가 문강형준의 이야기를 들으며 예술가로서 이서 작가의 작업과 삶이 겹쳐졌다.왜 이서 작가가 여기 집을 떠나 파리에서 공부하고 머물다 다시 거기의 집을 떠나 여기의 작은 한옥으로 돌아와 삶을 보여주는 전시를 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조금은 가까이 다가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기꺼이 새로운 것을 택하여 어려움의 파도를 마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화과는 바깥으로 꽃을 피우지 않기에 꽃이 없는 과일이지만 화려한 속을 가진 과일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안에 감춰진 꽃을 가진. 평범한 일상의 공간이면서도 다양한 결을 가진 집, 이서재는 그렇게 바깥으로 열려 이웃을 불러들이고 문학 이야기와 집을 연결하고 있었다. 그 시간과 장소에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며 낯선 사람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눈 이서재를 나왔다.홍수영황두진건축사사무소 오피스 큐레이터,실험 서점 프로젝트인 서울오감도 프로그램을 옥인동 개인 공간 혹은 서울오감도의 바깥 어딘가에서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