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의 눈’후기#이서 작가가 기획한 ‘집’에 관한 전시가 열렸던 장소는 작가 자신이 삶을 이루고 있는 이서재 利敍齋이다. 누하동 작은 골목길들을 지나 만나게 되는 한옥 집이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되던 날, 나는 무작정 지인을 따라 이서재를 방문했었다.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내리던 날이었다. 여린 대나무 잎 끝으로 흐르던 빗방울과 ‘우두둑 ‘지붕 위로 갑자기 떨어지던 빗소리, 흔들리는 풍경 소리의 기억. 이서 작가와의 첫 만남에 대한 기억은 그곳에서 경험한 소소한 풍경들, 소박하지만 인상적인 일상의 풍경들과 함께 남아있다. ‘삐그덕’ 오랜 시간이 열리는 듯 나무 대문을 밀고 들어선 곳에는 작은 뜰과 장독들, 큰 두바퀴의 녹색 자전거와 동화 속 소녀가 쓸법한 밀집모자들이 나란히 벽에 걸려 있었다. 방 안 작은 창문으로는 북악산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놓여있었다. 살아 온 세월을 보여주는 듯 그녀의 지난날부터 지금까지를 기록한 증명사진들은 가지런히 액자에 넣어져 부엌 어귀에 걸려있었고 정성스레 홀로 도배했다던 벽면, 부엌의 타일들, 한눈에 봐도 어느 것 하나 같아 보이지 않는 도자 그릇들... 소박하지만 섬세한 풍경들은 쌓이고 모여서 이번 전시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나는 집전의 여러 프로그램 중 ‘겸재의 눈’에 참여하였다. 우리의 선조들이 대상을 바라보던 방식을 옛 그림을 통해서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금릉 김현철선생님께서 산수화를 그릴 때 풍경을 바라보던 삼원법을 겸재의 그림을 예로 설명하여 주셨다. 심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마당과 연결되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들으며 이전의 이서재와 조금 달라진 풍경이 집안 곳곳에 걸려있는 그녀의 그림들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마도 오랜 외국생활 동안 이서작가는 고국을 맘 속으로 늘 그리워했는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음으로 모국의 산천을 걷는 상상을 해왔고 그래서 마침내 귀국 후 이 땅을 직접 발로 걷고 호흡하며 이곳의 공기와 바람을 담아 옛 방식으로 우리 산천을 화폭에 담아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서재는 작은 구석까지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것처럼 따뜻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반갑게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자신이 믿는 예술을 일치시키고자 행동하는 정성어린 태도가 좋았다.집은 돌아갈 곳이다. 내가 어디로 향하여 가던지 돌아갈 곳이라고 생각하고 늘 돌아가고 싶어했던 곳이 집이었다. 짧지 않는 두 번의 유학생활을 하면서 그곳에서의 나의 집은 내가 하루의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는 기숙사, 머물던 숙소였다. 하지만 늘 마음 속에서 집은 내가 자란 곳 그리고 형제들, 부모님이 계신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느새 일년이 되었다. 작년 초겨울 우리 가족은 36년간 살았던 정든 동네와 집을 떠났다. 부모님은 생전 처음 아파트에서의 삶을 시작하셨고 언니는 직장을 따라 이사하였으며 나도 현재 헤이리 마을에 있는 예술창작스튜디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우리 가족은 주말이면 부모님 댁에 모이지만 물리적인 환경의 변화는 나의 집을 갈망하게 한다.내가 원하는 집이 어떤 집인지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길 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나는 나만의 집에 대한 상상을 하곤 한다. 유랑하는 자에게 집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집도 이동한다. 마음과 함께 집도 변형한다. 어쩌면 내가 그리는 집은 하루의 지친 마음을 누일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간단한 내 소개 글그림을 그린다. 20대 중반에 시작한 장거리 여행이 십년 안팎의 유학생활이 되어 미국, 영국 그리고 중국에서 체류하였다. 길에서의 우연한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들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기억에 대해 관심이 많고 기억과 관련된 풍경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