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아직 집에 안 왔어? 이거 골동반 한 그릇 먹이면 좋은데..."2017년 서울 누하동 골목 한옥집에서 들리는 소리다.요즘 어느 누가 이웃집 아들의 끼니를 걱정할까?이서재 이웃들에겐 일상의 대화인 듯 했다.서늘한 바람이 댓잎을 스치는 가을 오후,윤이서 작가의 기획전시 '집전' - 우리골목 밥상, 우리골목 타로'에서 나는 20년전에나 느낄 수 있었던 이웃의 온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왔다. 이날 골목 밥상은 골동반. 손맛이 좋은옆집 아주머니께서 준비해주셨다고 한다.애호박과 고사리, 시금치, 콩나물, 표고 등 각색 나물과 다진한우, 부침개, 다시마 튀각, 달걀지단까지 11가지의 매력적인 고명들이 앞마당을 가득 채웠다. 여기에 아주머니의 히든카드 된장찜과 고추장, 참기름이 일렬 종대로 대기 중...처음 뵙는 분들과 둥근 양은밥상에 둘러 앉아 말 그대로 '식구'를 갖추고 밥상을 맞는다. 윤 작가가 직접 빚은 술로 반주(내겐 해장술)까지 곁들인 완벽한 밥상이다.지난밤 '자유부인'으로 하얗게 불태운 탓에 아무것도 안 들어갈 것 같던 내 속은..골동반 한 그릇에 온몸에 땀을 쏟아내며 역대급 해장을 했다. 이건 정말 뭐랄까..집밥의 푸근함과장인의 손맛, 최고급 한정식집 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한 끝' 차이의 특별한 맛! 그야말로 인생비빔밥이다.술은 찹쌀과 누룩, 물만으로 빚은 '부의주'라는 것인데, 멀건 탁주에서 꽃향도 나고 과일향도 났다. 태어나 마셔본 전통주 중 탑(top)이다. 이걸 맑게 띄우면 청주가 되는데, 이걸로 올 추석 차례 지내고 음복하면 조상님들께서 온갖 복을 주실 것만 같은 맛이었다.배를 채우고 나서야 나는 건넌방인 '평화다방' 문을 열었다.통인시장에서 오랜 세월 '타로'를 봐오신 분이자, 또 한 분의 골목 이웃이 앉아계신다. 이웃집 손주의 수능시험 결과까지 척척 맞추셨다는 내공 가득한 분께 나의 답답한 부분을 열어본다. 옆집 아주머니라는 푸근함 덕분일까? 보다 따뜻한 용기와 위로를 얻는다. 잘되면 또 찾아오라며 AS까지 개런티 해주시는 아주머니, 나의 이웃 중 이런 분이계시다면 매일 찾아가 징징댔을지도 모르겠다.각본 없는 정(精)이 오간 '우리골목 밥상, 우리골목 타로' 전시. 여기는 아직도 80,90년대의 이웃간 온정이 남은 곳인 것 같다. 수저가 모자란다니까 "울집꺼 가 올까?" 하는 이웃. 이웃집 아들 끼니 걱정하는 이웃. 집에 온 손님에게 그냥 보내면 안 된다며 뭐라도 하나 더 입에 넣어주려는 이웃.숨죽이고 감춰 살기 급급한 우리네 삶에 씁쓸한 반성이 들게 하는 모습들이다.'집전' 이후 며칠이 지나 오랜 동네 이웃사촌을 만났다. 친이모도 아니면서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쭉 연락하며 '이모 이모' 부르는분. 우리집, 우리 가족의 역사를 3인칭 시점에서 기억해 주고, 골목, 동네의 기억을 나누며, 그 시절을 같은 마음으로 추억할 수 있는 사람. 나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봐 온 제2의 가족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축복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의 집이자 우리의 골목, 모두의 동네를 함께 공유하고 의지하며 나아가 추억할 수 있는 터전.어쩌면 윤이서 작가가 '집전'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도 이런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