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에 '한국 전통주 연구소' 소장이신 박록담 선생님과 나눈 '잃어버린 술, 잃어버린 집' 에 대한 리뷰입니다.글 을 써주신분은 박지현 선생님이십니다. 어느 날, 동네 시시콜콜한 소식이 올라오는 어느 인터넷 터에서 이서 작가를 ‘목격’했다. ‘목격’이라 표현한 것은 그 날 사실 적쟎은 충격과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푸른 인왕산 수성계곡 앞에서 기린교의 바랜 화강암과 비슷한 빛깔의 오랜 옷을 입고 서 있었다. 그 사진 아래 그녀는 ‘집전’이라는 한 달 간의 전시 프로그램을 수줍고도 진지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이제 수성계곡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이 지나쳤는데 그 공간의 사진도 아름다웠고, 한 달간 밥, 사람, 집, 그림, 영화, 문학, 음식, 술, 공간, 차에 관한 주제로 매주 빼곡히 채워진 전시 일정도 놀라웠다. 게다가 그 전시는 이서 작가의 집에서 이뤄진다는 대목에서 충격이었다. 낯모르는 이들을 불러 먹이고 나눈다고? 염치 불구하고 나도 얼른 그녀의 전시 일정 중 하나에 비집고 들어섰다. 게다가 마치 나의 집에서 하는 잔치인 마냥 나와 친한 안인영 박사도 초대했다. 9월 29일 박록담 선생님의 ‘잃어버린 술, 잃어버린 집’이었다. 이서 작가님이 우리의 신청을 받아주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9월 29일 날씨는 생각보다 추웠다. 이서 작가님의 집은 매우 앙증맞았다. 추운 남극에서 1년의 반을 보내는 안인영 박사는 모르지만 정말 나는 추위가 싫은 사람이다. 다행히 그 날은 그 작은 집에 모인 사람들의 온기로 추위가 금세 사라졌다. 청청한 대나무를 뒤 배경으로 삼아 박록담 선생님은 구수한 술 이야기를 풀어 놓으셨다. 서촌에서 ‘한국전통주 연구소’를 운영하시고 ‘내외주가’의 주인장이신 박록담 선생님은 우리 술에 있어 국내 손꼽히는 전문가다. “예전에 우리 아버지가 술을 정말 좋아하셨죠…”로 시작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그럼 그렇지, 술을 아는 박록담 선생님에게는 역시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그런 아버지를 위해 술을 빚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있었다. 그가 나고 자란 전라남도 해남의 고향집에는 수많은 친척들과 동네 손님들이 늘 붐비는 곳이었다 한다. 사람들이 오면 늘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자연스레 그는 청년이 되어 고향집을 찾을 때마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가양주(집에서 빚는 술)를 들고 아버지께 드렸다. 그러면 용돈이 두둑히 생기기 때문이었다고. 그런데 어느 순간 꾀가 나서 내가 직접 술을 빚어보자는데 생각이 이르게 되어 그때부터 고향 부근부터 방방곡곡 술을 빚을 줄 아는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몸에 익은 술 빚는 법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노인들이 가르쳐준 대로 빚었건만 술을 번번히 실패였다. “내가 성질이 급하고 고약했어요. 술은 누가 빚나요? 술은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누룩이 만들어요. 사람은 누룩이 잘 먹고 잘 소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죠. 그런데 내가 젋었을 때 성질이 급했어요. 그러니 술이 안되지...” 어느 순간 나이들며 느긋해지면서 그의 술맛도 제대로 되기 시작했다고. 그는 술을 빚을 줄 알았던 그 옛 노인들 뿐만 아니라 고전과 연구를 통해 자신만의 술 빚는 법에 이르렀다. 박록담 선생님은 말미에 “좋은 술은 달아야 해요. 술을 많이 마시면 몸이 상합니다. 달면 많이 못마십니다.” 드라이한 와인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말은 울림이었다.박록담 선생님의 술 이야기가 마무리 되고 그가 빚은 술 ‘호산춘, 세상만사’를 맛보았다. 참으로 맛나고 향기로운 술이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전통주 중에 으뜸이었다. 이어 이서 작가가 담갔다는 술, 제자들이 빚은 술 모두 함께 나누며 즐거운 담화가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은 술을 통해 이야기를 텄다. 역시 사람의 사귐에는 술이 최고다.그 이후 나는 드라이한 와인과 위스키 주량을 줄이고 있다. 박록담 선생님 말씀처럼 어쩌면 쌀로 빚은 우리 술이 내게 더 맞는 것 같다. 또한 술을 통해 사람과 솔직하게 사귀고 터놓되, 예를 잃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또 하나, 함께 한 안인영 박사와는 더욱 가까운 정이 들었다. 평생 남극의 해양생물과 생태를 연구해온 안인영 박사와의 인연은 술처럼 오래 익어갈 것이다. 이서 작가님과는 좋은 인연이 시작될 느낌에 행복했다. 아름답고 쓸쓸하기도 하면서 매력적인 그녀와 사귀어 보고 싶다.어느 가을 날, 정성과 나눔으로 집을 기꺼이 내주고 우리 술에 대해 알게 해 준 이서 작가님과 박록담 선생님께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