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재의 아침 홍차 시간서촌 필운대로에 ‘헤르만의 정원’이라는 홍차전문점이 생긴지 얼마 안되었을 때 가본 적이 있는데 마침 스리랑카 여행을 한 직후라서 찻집에 누아라엘리아(Nuwara Eliya)의 차밭 사진을 발견하고 무지 반가웠다. 차밭의 정취를 서울에서 한껏 느끼는 기분이 좋아 또 찾아갔을 때, 이서 작가님을 그곳에서 마주쳤다. 차 한잔과 함께 책 읽으러 왔다는 이서씨는 마주칠 때마다 개성있는 차향과 같은 아우라가 느껴지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이서재에서 오랜동안 벼른 집전을 드디어 펼치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 여러 알찬 프로그램 중 어렵사리 골라 신청한 행사가 ‘헤르만의 정원 장유정 선생님과 함께하는 아침 홍차’ 시간. 어머니와 동행하여 햇살이 포근한 예쁜 가을날, 사랑스러운 한옥에 도착했다.심상치 않은 위용의 사모바르(Samovar: 러시아식 물 끓이는 주전자)가 끓고 있고 정갈하게 정렬된 우아한 찻잔들이 우릴 반겼다. 홍차 선생님은 우선Royal Blend (주로 아쌈 홍차잎에 실론 홍차잎을 적절히 섞은 홍차) 한 잔씩을 미니 스콘과 대접해주시며 홍차의 유래부터 설명하셨다. 중국의 무이산 정산지역에서 생산되는 正山小種(정산소종)이 그 기원인데 차잎을 말릴 때 소나무를 태우기 때문에 깊게 배인 훈연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며 소량만 생산되므로 매우 귀한 차이다. 영국의Fortnum&Mason 브랜드의 Lapsang Souchong을 추천하시며 손님들께 차잎향을 맡게 해주셨다. 한약 냄새도 나는 것 같고, 깊고 어두운 숲속의 느낌을 얹은 이국적인 향기에 갑자기 먼 여행을 온 기분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얼 그레이는 대표적인 가향차로서 홍차잎에 베르가모트(bergamot) 오렌지 껍질에서 추출한 기름을 첨가한 차이며 영국의 찰스 그레이 백작이 고급 중국 홍차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 향을 입혔다는 설도 있고 그 기원은 불분명하다. 어쨋든 Twinings사가 얼 그레이를 가격 대비 맛있게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유명한 홍차회사 Lipton은 일찌감치 스리랑카의 홍차밭을 확보하여 성장했다고 한다.차 끓이는 법의 골든룰은 3·3·3의 법칙이라 부르는데 3g의 홍차를 300cc의 끓는 물에 3분간 우리기! 홍차 전문가님의 팁은, 특히 홍차는 매우 뜨겁게 마셔야 하기 때문에 뜨거운 물을 한 차례 주전자에 부어 우선 주전자 자체의 온도를 데운 후, 이 물을 버린 후에 다시 끓는 물을 붓고 차를 우린다고 한다.그런데 홍차 선생님은 사실 우리들 각자의 ‘차 마시는 시간’을 궁금해 하셨다. 차례대로 돌아가며 차를 마시는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추억이 있는지 얘기를 도란도란 하게 되었다. 어떤 이는 일상을 벗어난 배낭여행의 추억을 소개했고 우리 어머니는 옛날에 아이들 키울 때 혼자 홍차 마실 시간에 애들 중 누군가 보채면 짜증이 났던 기억이 문득 난다고 하셨다. (순간 뜨끔하였다.) 나에겐 차 마시는 시간이 대화의 시간이다. 친정집에 가서 어머니와 밀린 수다를 떨 때 꼭 차나 커피를 한다. 결국 자연스레 집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테마로 돌아왔다. 대부분 집에서 차를 즐기는 시간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늦은 아침에 시작한 우리의 홍차 시간이 오붓한 이른 오후가 되어 있었다. 갈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가을 햇살 머금은 우아한 홍차의 빛깔이 오래도록 눈에 아른거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