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지암 : 차. 향. 집 <하루 일지암 : 차. 향. 집>은 13년의 파리생활을 접고 인왕산 아래 서촌에 둥지를 튼 이서(利敍)의 ‘귀가(歸家)’프로젝트 중의 하나이다. ‘산 넘고 물 건너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프로젝트는 ‘이로움을 펼치는 사람이자 집’이라는 자신의 바램대로 평범한 일상을 나누는 이웃을 만나고, 가꾸고 이야기하는 ‘집’으로서 온전한 삶이 돌아갈 곳, 그 집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서가 <일지암 운몽도>를 준비하며 머물렀던 인연으로 일지암 스님을 이서재로 모시면서 하루 동안 집이 일지암 되었다. 해남의 일지암이 잠시 이서재로 옮겨 온 셈이다. 담벼락의 푸른 대나무 아래 정좌하신 법인 스님의 모습은 한없이 맑고 평화로웠다. 오후 4시는 수직으로 뻗은 대나무 잎에 반짝이는 햇볕과 작은 그늘, 고요한 미풍에 흔들리는 풍경소리가 서촌의 오후를 신비롭게 흔드는 시간이었다. ‘하루 일지암’에 참여한 열 명 남짓한 손님들은 저마다 이 풍경을 조용히 음미하며 미소지었다. 일지암에서 가저왔다는 차탁위에 가지런히 놓인 찻잔을 마주하고 법인 스님은 차와 초의선사, 그리고 일지암에 대한 이야기로 차담을 시작하였다. 우리 차의 내력과 전개는 매우 어려움 속에 있었고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가 초의 선사의 특별한 노력에 힘입어 차에 대한 이론과 실제가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일지암은 초의선사(1786~1866)가 1826년부터 40년 동안 머문 곳이다. 선사는 39세가 되던 1824년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중국 당나라의 시승 한산(寒山)의 시 “뱁새는 언제나 한 마음이기 때문에 나무 끝 한 가지(一枝)에 살아도 편안하다”에서 ‘일지一枝’를 따와 일지암이라 불렀다고 설명해 주셨다. 법인 스님은 자신도 초의 선사처럼 가능한 일지암을 떠나고 싶지 않노라고 말하였다. 법인 스님이 내 주신 일지암 차는 차와 더불어 향도(香道)를 하시는 정진단 선생의 기품있는 차 내림과 함께 그윽한 향이 더해져 감로(甘露)와 같이 단 맛을 입안에 머물게 하였다. 차와 향, 선이 하나가 된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다진 모래가 있는 작은 통에 향을 맡는 일은 낯설고 신비한 체험이었다. 향도를 하는 이유에 대해 물으니 정 선생은 우리가 혀와 귀에 대해 하는 수고에 비해 코에 대한 노력은 하지 앟는다는 것, 좋은 향기를 맡고 정신을 각성하는 계기가 향도의 요지라는 것이었다. 다시 법인스님은 초의와 다산, 추사로 이어지는 당대 대학자들과의 교류와 남종화의 거장인소치 허련을 가르쳐 추사에게 보낸 일화를 이야기해주었다. 동갑내기로서 초의와 추사의 각별한 교류는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되었을 험난한 뱃길을 건너 세 차례나 제자 소치를 통해 추사에게 손수 법제한 차를 보내고 추사는 초의에게 글을 써 보낸 일화를 소개하였다. 이로서 차와 선이 둘이 아니요 시와 선이 둘이 아닌 다선일미(茶禪一味)가 초의의 다송(茶頌)을 통해 완성되었던 것이다. 법인스님은 이러한 초의의 사상을 시 하나로 예시해 주었다. 靜坐處(정좌처) 고요히 앉은 자리에 茶半香初(다반향초) 차를 반이나 마시도록 타는 향은 처음과 같고 妙用時(묘용시) 고요히 흐르는 시간에도 水流花開(수류화개) 물은 흐르고 꽃은 피더라 이 시를 의역하면 “고요히 앉아서 차를 마시면 감로향이 시작되는데/ 미묘한 순간 물 흐르고 꽃이 피네”로 해석할 수 있다. 다반향초(茶半香初)는 차를 마실 때 차의 향을 음미하고 반 정도 마신 차를 음미하면 입안에 감로가 고이고 향이 혀 끝에 느껴지는데 이를 일컫는 말이다. 입안에 침이 고이는 감로는 경락을 따라 흐르며 기혈을 열고 봄에 절로 꽃이 피듯이 몸에 생명의 꽃을 피어나게 한다. 차를 통한 선의 한 맛이 우리를 미소짓게 한다. 맑고 향기로운 차 한잔이 부족함이 없는 마음의 충전을 가져왔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작곡한 곡을 이서가 피아노에 실어 연주한다. 삼베 받침대 위의 차 한잔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나는 미각과 후각, 청각이 어울린 하루 일지암이 어느덧 집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오체투지이자, 그리움 같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서의 집전은 우리 안에 그려져 있을 그 ‘집’으로 돌아가는 작은 이야기, 그것의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가을 어느날, 꿈 같은 그리움이 펼쳐진 하루 일지암은 이렇게 끝났다. 하루 일지암 이후, 여운이 가시지 않아 열이틀 지난 어느날 남도로 발길을 돌렸다. 염전이 바람이 일렁이는 해남 바다를 지나 두륜산 대흥사로 향하였다. 길가에 일년에 꼭 열흘 핀다는 금목서가 아찔한 향기를 뿜고 있었다. 부처님 얼굴같은 두륜산 정상 및에 자리한 일지암은 조촐하고 소박한 암자였다. 스님은 계시지 않았지만 일지암에 또한 금목서 향기로 가득했다. 초의 선사가 거했던 자우홍련사 누마루에 이서의 사진 작품 <운몽도>가 편액처럼 걸려 있었다. 일지암 주변의 풍광을 구름처럼 형상화한 사진꼴라쥬인 운몽도는 ‘삶과 죽음이 한 조각 구름의 일어남과 스러짐과 같다’는 서산대사의 해탈시처럼 집착없는 인생의 대자유를 비유한 그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차와 선이 다르지 않다는 다선일미라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진리를 구현한 초의 선사를 생각해 볼 때 <구름 꿈雲夢>은 집으로 가는 길에 대한 비유, 곧 담담하고 소박한 삶의 꿈이 있는 곳에 대한 그리움 정도로 해석해 본다. 이서가 그린 운몽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서는 집으로부터 멀어진 나그네처럼 그의 운몽을 지속할 지도 모른다. 다만 이서와 함께 했던 하루 일지암의 빛과 그늘 맛, 향기, 소리, 스님과 함께 한 인연들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