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소리, 일상을 기억하는 법리뷰: 김명석김명석 물리학을 공부한 다음 언어철학 및 심리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북대 기초과학연구소, 중앙인사위원회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 국민대 교양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후기 분석철학의 인식론과 언어철학, 언어와 사고의 기원, 자유의지와 마음의 힘, 뜻 믿음 바람 행위의 종합 이론, 양자역학의 존재론 해석을 주로 공부하고 있다. 나는 올해 내 집을 가졌다. 어머니와 따로 살게 되었다. 내 이삿짐에 어머니의 가계부가 잘못 따라 왔다. 가계부의 끝장에 당신의 70년 삶이 짧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용의 절반은 우리 남매를 낳은 이야기이고 나머지는 여태 이사 다닌 곳의 이름이었다. 경남과 경북의 어촌, 산촌, 강촌을 돌아 다녔다. 한곳에 머물 집을 평생 애타게 바랐던 당신의 고단함을 읽으며 집과 삶을 성찰했다. 그가 떠돌 때 나도 이곳 저곳 이끌려 다녔고, 직장 때문에 홀로 서울에 온 뒤에도 한 평 단칸방부터 원룸, 오피스텔, 투룸 등을 떠돌아다녔다. 이사할 때마다 그토록 많은 서류, 이면지, 책을 싸들고 다녔다. 이제 내 집에서 평생의 짐들을 정리하며 긴 쉼을 취하고 싶다.이서 작가의 이서재에 들어섰을 때 그 집은 마치 100년의 역사 또는 그보다 긴 역사가 있는 듯이 보였다. 한옥이라는 양식은 100년 또는 500년 아니 1000년의 역사를 나타낸다. 작은 뜰과 대나무, 작은 창으로 보이는 북악산. 그 방 그 창으로 북악산을 바라보는 시선의 긴 역사에 지금 거기 사는 사람과 거기 손님과 내가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100년 전에는 없었을 피아노가 있다. 이국 땅에서 삶의 새 무대를 꿈꾸었던 영혼이 이제 그 방에 돌아와 피아노 앞에 앉는다. 앉으면 창밖으로 낮은 집들의 지붕이 보이고, 공맹의 이념을 구현하려는 조선의 철학자가 오르내렸던 산이 보인다. 오늘 그 자리에서 이서 작가는 이국 땅에서 만들고 연주한 소리를, 오늘날 이 나라의 정치 이념을 이루는 한 정치인의 죽음을 기억하며 만든 소리를 연주했다. 또한 작년 촛불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맥락 없이 엉뚱하게 들은 ‘포도나무'를 성악가의 노래로 연주했다.내 옆에 앉은 손님은 눈물을 훔쳤다. 이 작가의 삶을 잘 아는 이는 그 소리와 공명할 감정을 갖고 있었다. 방 안의 조명은 부드러웠다. 아까 들었던 김회진의 대금과 장구가 다시 환청처럼 들린다. 손님들은 어둠이 찾아온 그 집에서 노랫말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노래를 불렀다. 하나 둘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이서 작가는 거기 홀로 남아 그 집에서 우리의 시간들을 생각하고 있을 테다. 그는 자기 집에서 자기 집으로 마침내 귀가했다. 집전의 마지막은 오직 작가 자신만이 감상할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집전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른다. 각자에게 자신만의 집전이 있고, 우리는 시작과 끝을 모른 채 다른 이의 집전 중간에 짧게 참여한다. 내 집, 우리 집, 내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