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 지리지 鬱陵 地理志

530cm x 35 cm 화첩에 수묵, 2018
그림은 울릉해안 이곳과 저곳의 풍광을 이어 붙혀 조합하여 펼쳤다. 관음도에서 시작하여 천부 송곳바위, 코끼리 바위를 건너면 현포의 노인봉에서 태하마을, 도동의 항구와 행남 산책로를 따라가다 대풍감을 잇고, 죽도를 지나 내수전에서 섬목, 삼선암까지. 그리고 또 긴 물길을 따라 독도에 가 닿는 풍광이다. 울릉은 누가 보아도 기이하면서도 조화롭고 울창하고도 깊은 화산섬이다. 독도는 그 울릉의 연장이다. 울릉 안에는 독도가, 독도의 질감과 형상이 곳곳에 있다. 산 것은 울릉에 있다. 독도는 그리움이다. 독도의 ‘獨’ 은 홀로 있어 외로운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어 그리운 섬이다.  우리땅에 뿌리를 두고 태어난 누구에게나 한 점으로 가슴에 있는 것이다.

<울릉지리지> Ulleung Geography

부분 5/1 : 관음도-섬목/ 천부, 송곳봉-코끼리 바위

 

관음도 觀音島

척박한 조건에도 잘 자라는 섬보리장나무가 지천에 널려있는 관음도의 옛이름은 깍새가 많이 살았기 때문에 깍새섬이라고 하기도 하고 깎아지를 절벽이 많은 섬이라서 깍깨섬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다가 각개覺開(깨달음이 열리는)섬이라고 좀 점잖게 의미를 담는 이름이 되었다가, 그 깨달음의 의미에서 관음도 觀音島가 되었다.

지금은 다리가 놓여 있어 섬목을 거쳐 관음도를 걸어가 볼 수 있는데, 삼선암이 보이는 선창 선착장 근처부터 유일하게 일주도로가 놓여있지 않은 내수전 앞 바다까지 한번에 둘러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관음도 뒷편으로는 죽도가 가까이 시야에 들어온다. 처음 관음도에 다리를 놓고 그 섬에 들어가니 고양이 만한 쥐들이 살고 있었다고 했다. 오고가는 배편으로 들어왔을 쥐들은 천적이 없이 거대해 졌고, 다리를 타고 울릉도 본 섬으로도 넘어 왔을 것이라고도 했다.

 

천부, 송곳봉 천부항에서 보이는 송곳봉은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어 붙혀진 이름이다. 점성이 많아 쉽게 흐르지 못해 굳은 조면암질 용암이 굳어 솟아올라 만들어졌다. 지상에서 430m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바위이 모습이 기이하여 석양이 질 때 쯤 바라보는 풍경이 묘하게 신비롭다. 송곳봉이 보이는 천부의 본래 이름은 일본인들이 울릉도의 나무를 도벌해 실어 날랐다 하여  왜선창 倭船艙 이다. 이 천부에서는 울릉도 모든 버스의 종점이라 그곳에서 어디든 버스를 갈아타고 갈 수 있다. 성인봉이나 나리분지를 대중교통으로 갈 때 천부에서 갈아타고 갈 수 있다. 몰아치는 파도소리와 금빛 찬란한 일몰이 이루는 그림같은 장관을 곁에 두고 버스로 지나는 해안 길, 이 벅찬 귀가길의 두근거리는 빛깔을 또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코끼리 바위 공암이라고도 하는데 바위의 모습이 물속에 코를 담그고 있는 코끼리와 비슷하여 코끼리 바위, 혹은 바위에 구멍이 있다고 하여 공암, 혈암, 구멍바위라고도 불린다. 원래 울릉도와 연결되어 있었으나 파도에 의해 깎이면서 지금의 섬 바위로 떨어져 나왔다. 용암이 식었던 방향으로 이리저리 뻗어있는 주상절리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는 바위의 표면이 독특하다. 높이 59m의 코끼리 바위 옆에 작은 바위가 있는데 그것을 울릉도 사람들은 코끼리 똥 바위라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옛날, 그 옛날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며 웃었을 것 같아서 빙그레 웃음이 났다.

 

부분 5/2 : 노인봉-현포항/ 태하

 

 

노인봉  현포항에 우뚝 솟은 또 하나의 거대한 바위 노인봉은 수평에 가까운 수많은 주상절리들로 이루어져 있어 바위의 표면에 유달리 주름이 많은 듯 보여 노인봉이라고 했다. 붙혀진 이름들은 참으로 수수하고 직관적인 이름들이다. 울릉도의 노인들은 천년 만년 더 이상 늙지 않는 노인봉을 보여 기운이 났을까. 생각했다.

현포항 예전에는 울릉도에 일주도로가 없었다 했고, 높이 솟은 땅으로부터 바다로 바로 이어진 해안가에는 호박이 주렁주렁 넝쿨채 자라있었는데, 그 호박과 호박잎이 축 늘어져 바다까지 드리워져 있다가 파도에 일렁이는 모습을 멀리 배에서 바라 보면 울렁거렸다 하여 ‘울릉도’ 라 불렸을 것이라고, 울릉도에 대를 이어 사시는 이권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 장면을 상상을 해 보면 정말 그럴 듯 했다. 일주도로가 난 지금보다 훨씬 더 시적인 서사를 가진 섬이었을것 같다. 지금은 인적이 드문 잔잔한 바닷가의 작은 항구이다. 높이 솟은 노인봉이 경이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태하항 길고 장엄한 풍경을 가진 태하해안산책로와 대풍감으로 가서 반대편의 현포와 추산해안까지 절경을 볼 수 있는 모노레일을 타는 곳이 있다. 그러나 태하항에서 울창한 산길을 걸어 모노레일이 오르는 가장 높은 곳까지 걸어갈 수 있는 옛길이 있으니 나는 그 길을 권하고 싶다. 태하항에는 마주보고 두개의 중국음식점이 있는데 그래서 요즘 울릉도 사람들은 이곳을 ‘차이나타운’ 이라고 불렀다. 울릉에 머물면서 꼭 한번 태하 차이나타운에서 사람들과 저녁을 먹었다. 중국집 창문 너머로 붉은 해가 바다건너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조차도 감사한 풍경이었다.

 

 

부분 5/3 : 도동항-행남해인길 /  대풍감

 

도동항

도동은 저동과 함께 육지에서 오는 배가 닿는 곳이다. 숙소가 많이 있고 상권이 발달해 있어서 다른 항구보다 많이 번잡하다. 도동에 해안을 둘러싸고 있는 해안산책로는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울릉도 초기 화산 활동의 특징을 간직한 암석과 지질구조를 볼 수 있다. 그러한 암층 절벽에는 향나무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자라 자생지를 이루고 있는데 그런 향나무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어있다. 도동에는 보배식당의 홍합밥이 유명한데, 홍합과 밥의 비율과 식감이 월등하여 꼭 맛을 보아야 하는 곳이다.  곳곳에 울릉도 오징어를 말려 파는 곳이 있는데 요즘은 울릉도에서 오징어가 잘 잡히지 않아 팔고 있는 오징어는 가격이 비싸고도 크기가 잘다. 도동항 위쪽으로 올라가면 독도 박물관이 있다. 독도에 대한 전반적인 역사과 의미들을 잘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고, 독도 전망대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날이 좋은 날은 높은 도동의 봉우리에서 독도가 저 멀리 보인다고 했다. 두번쯤 올라갔는데 두번 다 독도를 볼 수는 없었다.   

대풍감 待風坎

육지에서 낡은 배를 타고 울릉도에 와서는 새 배를 만들어 돛을 높이 달고서  절벽 바위에 뚫린 구멍에 닻줄을 메어 놓고 본토 쪽으로 불어대는 바람을 기다리던 곳이라 하여 대풍감(待風坎) 이다. 기다리던 바람이 불어 돛이 휘어질 듯 하면 도끼로 닻줄을 끊어 한달음에 본토까지 향해 갔다고 한다. 이 대풍감은 태하에서 올라가 전망대에서 전경을 볼 수 있고, 거문작지(현포)에서 그 옆모습을 볼 수 있다.

 

 

 

부분 5/4 : 죽도/ 내수전-삼선암

 

 

죽도

대나무의 한 종류인 섬조릿대가 많은 섬이다. 울릉도의 44개 부속 섬 가운데 가장 큰 유인도이다. 해안은 온통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으나 최고 높은 해발 106m에 이르는 곳은 넓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다. 배를 타고 섬에 닿으면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야 하지만 정상에 올라서면 줄곧 수평의 길을 산책할 수 있다. 죽도에서는 관음도, 삼선암과 선창을 거쳐 내수전에 이르는 울릉도 본토가 이어 보이는데, 세차게 이는 바람 위로 보이는 그 풍광이 장관을 이룬다. 더덕이 많이 나서 죽도에 사는 유일한 부부의 생계를 이어 가게 하고 있다.

내수전

울릉도 개척당시 김 내수라는 사람이 화전을 일구며 살아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했다. 아담한 몽돌해변이 있는 내수전은 일주도로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곳이라 내수전에서 석포를 잇는 산길을 넘어 건너편 일주도로의 종점으로 갈 수 있다. 오래된 깊이를 간직한 길은 원시림이 주는 청명한 땅의 기운을 받으며 걷는 길이다. 고사리와 산이끼가 가득한 좁고 굽은산길을 걷는 것은 땅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 아닌 듯 신비로운 기억이다.

 

삼선암

관음도에 가기 전 절벽아래로 난 일주도로를 달리다 보면 우뚝 솟은 세개의 바위를 만나는데, 이를 삼선암이라 한다. 가장 높이 솟은 일선암의 높이가 107m 이니 그 위용이 어마어마 하다.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 바위의 빼어난 경치에 반한 세 선녀가 이곳에서 자주 목욕을 하고 하늘로 올라가곤 했는데 한번은 놀이에 열중하다가 돌아갈 시간을 놓쳐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세 선녀가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삼선암 중 이 바위가 막내선녀인데, 세 선녀 중 막내선녀가 좀 더 놀다 가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하늘로 올라가는 시간을 놓친 탓에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가장 많이 받아 풀도 자라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삼선암 주변에는 물살이 거친데, 오래전에는 이 물살을 잠재우기 위해 살아있는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인당수에 제물로 바쳐진 효녀 심청의 이야기는 그저 꾸며진 이야기는 아니었는지 모른다.

 

부분 5/5 : 독섬(독도)가는 길

서도-탕건바위 -촛대바위-삼형제굴바위 -동도

 

 

독도는 울릉도에서 2시간이 걸렸다. 울릉도는 육지에서 3시간의 거리이니 독도는 꽤나 망망대해에 있다. 배를 타고 선착장에 닿는 물길은 거칠었다. 배가 선착장에 접안할 수 있는 날이 연중 30일 정도라하니 물살의 거침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처음 배가 닿는 곳은 동도, 시야에 들어오는 촛대바위, 삼형제굴바위, 탕건바위, 숯돌바위, 서도는 신선이 사는 곳에 우리를 데려다 놓은 듯 뱃길 건너온 울렁임과 함께 몽환적 풍경을 자아낸다.

독도라는 이름은 1905년에 일제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편입하고 1906년에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엉뚱하게 홀로 '독 獨' 자를 붙혀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이 섬을 불러오던 우리 정서가 물씬 뭍어나는 우리 섬 이름들이 있다.

가제(강치)라 불리우던 물개가 섬에 많이 살아서 '가제도', 돌로된 섬이라 '돌섬'이라 불렀고, 비가 갠뒤 남동풍이 불 때 보인다 하여 '우산雨傘도'(이는 독도에서 울릉도를 보아도 마찬가지 상황이라 울릉도 지명도 우산도로 불리기도 했다. 울릉도에 사는 사람들만이 아는 현상적 이름이라고 했다. (이것은 울릉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학자들이 연구한 문헌에는 오래전 울릉도의 지명이 우산국 이라고 불렸던 것에서 우산도로 불렸다고 되어있다.) ) 또 지금도 울릉도 사람들이 많이 부르고 있고 가장 우리 정서가 담겨진 이름으로 과거에 분화구 인줄 알았던 천장굴의 모양이 항아리 단지처럼 깊은 굴이 있다 하여 항아리의 독에서 딴 '독섬' 이라 불리었는데 (항아리에서 유래한 항아리 '독'섬이라는 이름은 역시나 대이어 살아온 현지 울릉도 사람의 이야기이다.문헌이나 자료책들에는 돌의 전라도식 표현이라는 정도의 '독' 이란 해석이다. 나는 항아리섬의 독섬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보아진다.) 일제는 거기에서 '독'을 우리가 쓰는 정서적 의미와는 달리 땅으로부터 홀로 떨어진 섬, 주인없은 섬의 獨島독도 라고 의미를 바꾸어 부르게 했다. (독도라 부르는 것이 옳은일인가 생각해 보게한다.)

일본이 말하는 다케시마(죽도)는 더 의미가 없다. 독섬에는 대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울릉도에는 대나무가 많고 또한 지금의 죽도라 부르는 대섬이 있으니 처음부터 그들이 이야기하는 다케시마는 울릉도 본섬에 대한 이야기인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 독도를 죽도라고 부르며 일본의 상징적 생태계를 대변하는 이름을 쓰고 싶은 모양인데 일본땅에서 죽도라 불리는 섬이 얼마나 흔한지 인터넷에만 찾아보아도 두 세개는 나오는 그저 어디나 있는 흔한 섬이름을 붙혀 영토주장을 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적 맥락과, 수많은 증거들과, 거기에 발뺌할 수 없이 뿌리박은 울릉도의 삶과 생태계를 뒤로 하고서라도 납득하기 어렵고 헛웃음 나는 일이다.

섬으로 인정받으려면 물이 있고, 나무가 자라고 사람이 살아야한다. 울릉도에서 고기잡이하던 사람들은 치열하게 이 땅을 지키기위해 노력했다. 물골을 찾았고, 그 척박한 땅에 나무가 살게 하였다. 故 최성도씨가 살았고 김성도 씨가 뒤를 이어 서도에 살아왔으나 얼마전에 김성도씨도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그러나 또 누군가 이어 독섬에서 삶을 이어갈 것이다.

그 밖에도 독도 의용군이 1953년부터 3년간 일본으로부터 독섬을 지키기 위해 치열히 싸웠다는 이야기도 절절하고 조선시대에 울릉도에 살며 독섬 근처에서 고기를 잡다가 일본에 잡혀가거나 또 직접 건너가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돌아온 안용복의 이야기는 문서로도 직시되어 있는 우리의 역사적 사실이며 기록이고 바다와 섬이 기억하는 일이다.

독섬은 두번 가보았다. 처음은 호기심과 그 기이하고 아름다운 형에 마음을 온통 다 빼앗겨 뿌듯함과 동시에 스잔함이 일었고, 두번째 닿았을 땐 이미 가슴에 독도가 들어와 있다고 느꼈다. 우리 것을 두고 내 것이라 설득할 이유는 없다. 그저 이 땅이 당신 것이라 말하는 그들에게 당신네의 가슴에는 독섬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 당신네들 가슴에는 없지만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어딘가 자리하고 있는 섬이 이 땅 - 울릉도를 닮은 땅, 삶과 역사를 함께하는 땅, 우리의 동쪽의 끝이자, 대한민국의 시작, 처음 해를 맞는 독섬, 독도 이다.

 

 

* 독도와 울릉도에 관한 자료는 여러 책과 문헌을 보았지만, 울릉도에서 대를 이어살면서 독섬과 울릉도의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토종 식물의 이야기를 집필한 '이권수' 선생님과 직접만나고, 이야기 나누어 듣고, 그분의 책' 울릉국화'를 읽고 얻은 이야기가 우리 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 이번 울릉도 기행에는 도동에 자리를 잡으신 박태영 선생님, 울릉도독도해양과학기지 김종근 선생님께도 큰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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