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이 장소에 들어서면서 부터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심장을 조여왔다. 그것은 스잔한 슬픔같기도 했고 대상이 없는 막연한 두려움 같기도 했다. 날 것으로 펼쳐진 이 공간은 누군가의 생애, 그들의 가장 은밀한 삶 속에 들어와 있다고 여겨졌고 그것이 과거이면서 또 별반 다르지 않을 오늘을 지켜보는 것 같아 속이 울렁였다. 비어있는 공간이라지만 비어있지 않았다. 여전히 그 빈 공간은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했고, 말 하지못해 억눌려 있는 것 처럼도 느껴졌으며 이제 더 이상 아무말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듯 싶다가도 결국엔 모든 말을 다 꺼내 놓은 것 처럼도 여겨졌다. 그래서 이곳은 방의 고백이며, 그 구조물이 던지는 언어이며, 이 공간이 하는 말이고, 공기가 갖는 감정이다. 못다한 말들, 할 수 없는 말들이 방방마다 아우성치는 이 공간은 어쩌면 별반 다를바 없는 내 안의 나의 방을 또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당신 하지 못한 말 - 시
당신은 거기에 있습니까? 아니면 그 어딘가에 있습니까.
그 어딘가에도 봄은 왔습니까.
내가 그렇듯, 그 봄이 당신을, 그 길고 어두웠던 당신의 눈동자를 위로합니까.
나는 참 두렵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고,
내가 당신을 떠나고 사랑하는 법을 잊을까,
다시는 사랑이 무엇인 줄을 모를까 참으로 나는 두렵습니다.
당신은 거기에 있습니까?
혹은 그 어딘가에 있습니까.
그곳에도 봄은 왔습니까.
그 봄은 당신의 애닳은 겨울을 위로합니까.
서촌에서 전시 공간이 있는 길음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큰 나뭇가지가 필요해서 하루에 한가지씩 등에 메고 가기로 했다. 등에 나무를 메고 도로를 달릴때는 오히려 차들이 나를 피하는 듯 여겨졌다. 길이 잘 열렸고, 차들은 고함치지 않았다. 미아리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전시 공간까지 닿았다.
지금도 영업이 이루어 지고 있는 집장촌의 한 가운데 있는 이 공간은 으스스하고 스산했다. 심리적으로 위축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주변사람들의 말소리, 움직이는 소리가 창문없는 작은 창너머로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근방에 있는 작두만신 같은 점을 보는 집 같은데서 나는 소리인지 방울과 심벌즈 소리가 심하게 들렸다. 굿을 하는 듯 했다. 그저께 작업을 하면서는 집장촌 내에서 ‘아들아’ 하는 소리가 들려 참으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어제는 그것이 강아지를 부르는 것 인줄을 다시 고쳐 알았다. 아들을 부르는 목소리는 다정하고 정겨웠다.점심 때가되자 구수한 밥 냄새가 났다. 찌개를 끓이는지 군침이 돌았다. 언니들과 이모들이 모여 밥을 먹는 것 같았다.
그들의 삶안에, 어떤 틈으로 끼어든 것 같았다. 처음엔 참 낯설었으나 삼일쯤 지나니 익숙하여졌다. 다른 생태계를 경험하는 것이지만 결국 어디론가로 가는 각자의 삶을 살며 자신의 일상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었다.
당신이 하지 못한 말 - 노래
이 가락은 당신의 마음이 내는 소리입니다.
산넘고 물건너가는 그 길의 노래입니다.
산에는 봄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여름의 꽃, 가을 열매의 잔향이 그윽하였더랬습니다.
그리운것은 노래가 되어 구비구비 흐릅니다.
당신의 가슴에도 있을 가락입니다.
당신이 하지 못한 말 - 꽃
하나 둘 세마디쯤이나 될런가
열 스물 서른가지 향의 그늘인가.
세다가 별이되는 못다한 말
하지 못 해 꽃이 된 그 말
4월에 미아리 집장촌 내의 한건물에서 있을 전시 때문에 며칠전 답사 다녀왔던 그 장소가 자꾸 가슴에서 까칠거린다. 그 건물은 건물자체라기 보다는 한 시대와 한 삶을 대변하는 장소였고 앙상하게 발가벗겨진 채 남겨진 이 거친 구조물은 시멘트 벽이라기보다는 숨쉬고 있는 한 영혼같은 마음이 들어 줄곧 스잔한 마음이 떠나지를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내동댕이 쳐진 시대와 시간과 삶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마음으로 그 거칠고도 작은 방에 꽃한송이를 놓아둔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거친 방이 어쩐지 내 마음 같아서
그렇게 꽃한송이 곱게 놓아두고
나는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