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하지 못한 말

2016 설치, 시
전시가 이루어 지는 곳은 낯선곳 입니다. 재개발지구로 지정되었으나 여전히 그 자리에서 집장촌 군락을 이루고 있는 한 가운데에 자리한 비어있는 건물입니다.
건물은 거칠고 음하기조차 합니다. 벌거벗은채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그 건물 안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조금씩 방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거친방의 작은 창으로 한줌의 햇살이 비추어집니다. 그 작은창, 갈라진 콩크리트 틈새로 옆건물에서부터 흘러드는 구수한 음식냄새가 익숙해졌습니다. 방울과 심벌즈를 울려대며 여러번 하는 굿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제는 굿을 받은 이가 평화로와지기를 함께 염원합니다. 옆집 강아지 '아들'이 월월 짖으면 '왜 그러니, 무슨일이야' 하고 나도 덩달아 아들의 안부를 묻습니다.

다른 줄 알았는데, 다르지 않은 곳입니다. 서울의 한 지역에 조금은 다른 시간대의 활동을 하는 사람이 살고 있을 뿐입니다. 공간은 역사의 한장면 처럼 화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고 거친 공간을 보아주는 증인이 되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삶의 현장을, 한 삶의 이면을, 우리 자신의 편견과 내 자신을 조우할 이 곳.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290번지


전시는 작은 세개의 방에서 설치됩니다.

1 .당신이 하지 못한 말- 시 : 눈이 쌓인 나무의 방
2. 당신이 하지 못한 말 - 노래: 두터운 벽지 위로 종이 테잎으로 산수화를 수 놓습니다. 그 작은 방에 넓은 자연을 펼쳐두고 싶습니다.
3. 당신이 하지 못한 말 - 꽃 : 구겨진 편지의 형태로 도자기로 구워져 펼쳐지지 않은 채 놓여있습니다.

처음 이 장소에 들어서면서 부터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심장을 조여왔다. 그것은 스잔한 슬픔같기도 했고 대상이 없는 막연한 두려움 같기도 했다.  날 것으로 펼쳐진 이 공간은 누군가의 생애, 그들의 가장 은밀한 삶 속에 들어와 있다고 여겨졌고 그것이 과거이면서 또 별반 다르지 않을 오늘을 지켜보는 것 같아 속이 울렁였다. 비어있는 공간이라지만 비어있지 않았다. 여전히 그 빈 공간은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했고, 말  하지못해 억눌려 있는 것 처럼도 느껴졌으며 이제 더 이상 아무말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듯 싶다가도 결국엔 모든 말을 다 꺼내 놓은 것 처럼도 여겨졌다.   그래서 이곳은 방의 고백이며, 그 구조물이 던지는 언어이며, 이 공간이 하는  말이고, 공기가 갖는 감정이다.  못다한 말들, 할 수 없는 말들이 방방마다 아우성치는 이 공간은 어쩌면 별반 다를바 없는 내 안의 나의 방을 또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당신 하지 못한 말 - 시

 

당신은 거기에 있습니까? 아니면 그 어딘가에 있습니까.

그 어딘가에도 봄은 왔습니까.

내가 그렇듯, 그 봄이 당신을, 그 길고 어두웠던 당신의 눈동자를 위로합니까.

나는 참 두렵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고,

내가 당신을 떠나고 사랑하는 법을 잊을까,

다시는 사랑이 무엇인 줄을 모를까 참으로 나는 두렵습니다.

당신은 거기에 있습니까?

혹은 그 어딘가에 있습니까.

그곳에도 봄은 왔습니까.

그 봄은 당신의 애닳은 겨울을 위로합니까.                                                    

 

 

 

 

서촌에서 전시 공간이 있는 길음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큰 나뭇가지가 필요해서 하루에 한가지씩 등에 메고 가기로 했다. 등에 나무를 메고 도로를 달릴때는 오히려 차들이 나를 피하는 듯 여겨졌다. 길이 잘 열렸고, 차들은 고함치지 않았다. 미아리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전시 공간까지 닿았다.

지금도 영업이 이루어 지고 있는 집장촌의 한 가운데 있는 이 공간은 으스스하고 스산했다. 심리적으로 위축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주변사람들의 말소리, 움직이는 소리가 창문없는 작은 창너머로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근방에 있는 작두만신 같은 점을 보는 집 같은데서 나는 소리인지 방울과 심벌즈 소리가 심하게 들렸다. 굿을 하는 듯 했다. 그저께 작업을 하면서는 집장촌 내에서 ‘아들아’ 하는 소리가 들려 참으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어제는 그것이 강아지를 부르는 것 인줄을 다시 고쳐 알았다. 아들을 부르는 목소리는 다정하고 정겨웠다.점심 때가되자 구수한 밥 냄새가 났다. 찌개를 끓이는지 군침이 돌았다. 언니들과 이모들이 모여 밥을 먹는 것 같았다.

그들의 삶안에, 어떤 틈으로 끼어든 것 같았다. 처음엔 참 낯설었으나 삼일쯤 지나니 익숙하여졌다. 다른 생태계를 경험하는 것이지만 결국 어디론가로 가는 각자의 삶을 살며 자신의 일상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었다.

 

 

 

당신이 하지 못한 말  - 노래

 

이 가락은  당신의 마음이 내는 소리입니다.

산넘고 물건너가는 그 길의 노래입니다.

산에는 봄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여름의 꽃, 가을 열매의 잔향이 그윽하였더랬습니다.

그리운것은 노래가 되어 구비구비 흐릅니다.

당신의 가슴에도 있을 가락입니다.

 

 

 

 

 

당신이 하지 못한 말 - 꽃

 

 

하나 둘 세마디쯤이나 될런가

열 스물 서른가지 향의 그늘인가.

세다가 별이되는 못다한 말

하지 못 해 꽃이 된 그 말

 

 

4월에 미아리 집장촌 내의 한건물에서 있을 전시 때문에 며칠전 답사 다녀왔던 그 장소가 자꾸 가슴에서 까칠거린다. 그 건물은 건물자체라기 보다는 한 시대와 한 삶을 대변하는 장소였고 앙상하게 발가벗겨진 채 남겨진 이 거친 구조물은 시멘트 벽이라기보다는 숨쉬고 있는 한 영혼같은 마음이 들어 줄곧 스잔한 마음이 떠나지를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내동댕이 쳐진 시대와 시간과 삶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마음으로 그 거칠고도 작은 방에 꽃한송이를 놓아둔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거친 방이 어쩐지 내 마음 같아서

그렇게 꽃한송이 곱게 놓아두고

나는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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