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역사

240cm x 410cm _ 책장, 도구, 오브제
1960년 4.19 혁명의 신호탄 격이었던 마산의 3.15의거 60주년을 맞아 경남 도립미술관에서 기획 된 이 전시는 우리이 역사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끼친 영향들을 살피고 읽어내어 다시 펼쳐내는 전시이다. 또한 기억하고 오늘을 바로 보기를 바라는 전시이다.

 

 

집의 역사 _이서재 利敍齋

 

기억

1990년대 초, 내가 고등학생일 때 다니던 입시미술학원은 마산 3.15의거 기념탑 앞에 있었다. 버스에서 ‘이번 정류장은 3.15의거 기념탑입니다.’ 라고 방송을 하면 내렸는데, 그때는 그저 타고 내리던 정류장의 이름일 뿐 탑을 알지 못 했다. 그 후로도 3.15 가 대명사처럼 언급 될 때는 그 정류장의 안내 방송만 기억이 났다. 탑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잔상조차 없었다. 3.15 의거가 어떤 사건인지 수없이 기념탑 앞을 스쳤지만 묻지 않았다. 그저 무엇인지도 모르는 탑 하나가 처연하게 서 있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역사들이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흔적 하나 없었던 곳곳에 표식이 세워졌다. 걷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던 곳에 다른 의미들이 생겼다.  유년을 보내었던 교회와 소풍을 가던 곳곳,  심지어는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까지 역사의 상흔이 있던 곳이었다. 1960년 3월15일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수많은 고등학생들이 나선 거리, 학생들이 앞장서서 시위를 주도하고 결국 죽음으로 세상을 바꾸어 놓았던 그 현장 위에  ‘살아가면서’ 나는, 우리는, 그 사실을 기억하거나 알지  못했다.

 

목숨값

우리의 역사는 선한 사람들의 ‘목숨값’으로 민주주의를 지켜 왔다.  자신의 목숨이 가진 것의 전부인 사람들이 그 목숨을 내놓았다. 여리고, 가난하고, 맑고, 때묻지 않은 고결한 이들이 내놓은 목숨이 우리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켜 왔다.  1960년 눈에 체류탄이 박힌 채 물 속에 던져 졌던 김주열이 그랬고, 1987년에는 이한열이 그랬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외치며 화염 속에서 사라졌고, 세월호로 기억되는 어린 영령들은 온 국민이 촛불을 들게 했으며 결국 대통령을 바꾸었다. 4.16 4.19 5.18  ‘날’을 부르는 숫자는 억울한 죽음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 모든 익명의 죽음과 알고도 또 모르는 수많은 또 다른 이름들이 이슬처럼 반짝이다가 사라졌다. 힘없고 가녀린 목숨들이 부조리와 안이함과 폭거 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들이 누려야 했던 그 이후의 삶은 제도와 맞서고 불합리를 기억하는 불꽃으로 태워졌다.

 

다시 기억

우리는 오늘, 그 수많은 목숨에 빚을 지고 살고 있다. 그러므로 다시 기억하는 일에 소홀하여서는 안된다. 망각하여 같은 일이 되풀이 되어서도 안된다. 긴 역사는 집의 서재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다.  우리 자신의 생이 그 시절 속에 관통하고 있듯이 또 그  시절을 상기하며 우리의 할 바를 가늠 할 수 있다. 역사는 뿌리이며 조상이다. 뿌리의 뜻을 헤아려 내 그릇으로 만들어 내는 일은 역사를 기억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집의 역사’는 뿌리의 역사이자 나의 역사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전의 길이며, 미래의 길이다. 일상의 도구들에 새겨 두는 일로써, 또한 서재를 만들어 진열하는 행위가, 그 형식을 우리의 뿌리그림에서 차용하는 일들이, 또한 화석처럼 보일지라도 멀고도 멀지않은 ‘오래된 미래’를 그리는 것임을 웅변하려는 것이다.

 

 

경남 도립 미술관기획 / 새로운 시의 시대

2020년 2월 20 - 6월 14일

 

 

 

 

 

 

 

 

 

 

 

                      김주열을 기억하며/ Photography, 2020

 

 

새로운 시의 시대 2.

이서재 利敍齋_ 기억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이서재 利敍齋 는 '이롭게 펼치는 집'이라는, 집의 이름이며 또한 작가의 이름이다. 이서재는 우리의 풍토와 뿌리를 이해하고 전통문화로부터 받는 영감들을 통해 다양한 방법의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 재료로 그림을 그리고, 흙 빚어 그릇을 만들고, 일상을 음악으로 기록하는 작업과 한국적 정서와 문화와 지리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그 모든 일들이 ‘집’ 이라는 개념으로 묶여 집이 가지는 지속가능성, 정체성, 역사성까지 고려하며 가장 기본적인 삶의 시작에서 예술의 뿌리를 찾아 이웃과 대중이 함께 하는 작업으로 이어간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새기고 축적하는 방식으로 역사의 서재를 만들고 있다. 그 형식을 우리의 전통채색화인 책가도와 문자도, 책거리에서 차용하며, 책장과 서책을 중심으로 시계, 그릇, 수석, 거울, 부채 등 일상의 도구를 배치한다. 사람이라면 지켜야할 기본적인 덕목을 표현했던 문자도를 접목하고 책거리의 초현실적인 사물 배치를 참조하여 귀한 물건들을 담아 표현했던 책가도 형식으로 재현 설치한다.

   전통적인 색채와 구도를 갖춘 입체적인 책가도는 고전적인 이미지로 사건을 다루며 현재와 과거에 대한 선형적인 시간성을 회복시키고, 이미 말해진 말들과 이미지들을 결합하거나 분리하여 재배치한다. 그것은 희생자의 이름과 꽃과 일상이 혼재되어 겹치고 쌓이고, 들어가고 나오며 낯선 기념물을 만들어낸다.

   전통적이며, 일상적이고, 시적으로 새겨진 이서재의 기념물은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것들의 등가물로 작동하며 역사를 불러낸다. 아울러 기존의 기념물이 갖는 어떤 수사학이나 의도 없이 흔한 일상으로 스며들어, 우리가 말해야 하는 역사가 작금의 이념으로부터 배제되거나 첨가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의미가 부여된 것들과 의미 없는 것들의 교차가 불러내는 이질적인 재현은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며 결국 잊을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기억하도록 한다. 다시 말해 어제의 실재를 새로운 이미지로 배열함으로써 오히려 실재의 부재를 확인하는 동시에 부재의 현재를 사유하게 한다.

경남 도립 미술관 학계연구사 이미영

 

                           전태일을 기억하며, Photograph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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